여기는 몸의 색, 무늬 변신을 뽐내는 ‘패션 문어 마을’

변신의 귀재라 불리는 문어! 문어는 피부의 색뿐 아니라 질감을 원하는 대로 순식간에 바꾸고 심지어 다른 해양 생물의 형태를 모방하여 변신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얼마 전 화제가 된 문어 다큐멘터리 영화에서는 문어가 포식자를 피해 조개껍데기를 갑옷처럼 둘러 지능적으로 위장하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지요. <문어바다 변신마을>의 바닷속 마을, 이곳은 생존을 위해 몸의 색과 무늬를 바꾸는 변신술이 외모를 뽐내는 장식술로 발전한 ‘패션 문어 마을’입니다. 마을 문어들은 모두 패션에 민감합니다. 매달 마을의 동향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경향을 파악하고 최신 유행 무늬로 변신하여 몸을 꾸밉니다. 인기 아이돌의 한 멤버가 인간의 발에 밟힌 사건으로 신발 바닥 무늬가 유행하자 너 나 할 것 없이 명품 신발 바닥 무늬로 몸의 무늬를 바꿔 뽐내고 다니는 식이지요.
그런데 이 마을에는 변신할 수 없는 문어 ‘핑키’가 살고 있습니다. 핑키는 몸이 유달리 짙은 핑크색으로 갖은 노력에도 색이 바뀌거나 무늬가 생기는 등의 변신이 되지 않았습니다. 유행에 뒤떨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치부되는 패션 마을에서 오로지 핑크색일 뿐인 핑키는 항상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히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변신’할 수 없는 문어 ‘핑키’의 자존감 찾기 프로젝트!

때때로 출몰하는 포식자 곰치, 성게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핑크색 몸 그대로 살 수 없었던 핑키는 여러 실패와 연구 끝에 남들과 같은 ‘변신’이 아닌 자기만의 ‘변장’ 방법을 고안합니다. 그것은 버려진 물건들을 모아 몸에 붙이거나 그 속에 숨어 마치 다른 물체인 듯 보이게 하는 것으로, 무늬를 만들기보다 물체 그 자체를 이용하여 패션으로 도드라지지 않으면서 위장도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이거야! 드디어 성공이야!’
핑키만의 변장은 마을을 위기에서 구하며 결국 다른 문어들에게도 새롭고 독창적인 패션으로 인정받고 인기를 끌게 됩니다.
‘남들과 다르다’거나 ‘남들보다 부족하다’는 감정은 환경 또는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생겨납니다. 핑키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경쟁하기보다는 자기만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가며 마을에서 살아남습니다. 환경과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를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핑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마음속이 진정한 나다움으로 채워지는 기분 좋은 설렘을 독자도 함께 느끼리라 기대합니다.

그림책만의 묘미, 시각적 유머 장치

핑키의 자존감 찾기 프로젝트는 순조롭게 흘러가고 흐뭇하게 마무리되는데, 큰 재미를 주는 것은 터무니없이 불쾌한 상황을 우스꽝스러운 전개로 유쾌하게 풀어낸 작가의 유머 덕분입니다. 온몸에 명품 신발 바닥 무늬를 만들고 한껏 뽐내는 마을 문어, 변신할 수 없어 쓰레기를 무늬처럼 몸에 덕지덕지 붙인 핑키, 버려진 물건들로 꾸며 멋진 포즈를 취한 패션모델들을 보면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을 테지요. 또한 책장 가득 그려진 마을 문어들의 다양하고 익살스러운 포즈, 유명 인사와 유명 상표를 패러디한 이미지 등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작가의 시각적 유머 장치들은 그림책만의 묘미를 더합니다.
덧붙여, 바닷속 문어 마을 여기저기에 널려 있고 핑키가 재활용하여 변장 도구로 사용하는 물건들은 인간이 버린 공산품 즉, 해양 쓰레기임을 독자들도 쉽게 알아챌 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는 앞뒤 면지를 통해 해양 쓰레기에 정착한 문어들의 터전이 인간의 환경 정화 활동-쓰레기 수거-을 통해 다시 파괴되는 웃픈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웃음을 넘어 한번 더 곱씹을 거리를 남기고 있습니다.